배경

지난 22-1학기 중 감사하게도 우리 연구실 박사 과정 연구생과 함께 조사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KCC에 논문을 제출했고, 그 논문이 Accept되어 제주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논문 제출 직후 학부 과제와 이런저런 일들이 쏟아져서 아직 그 과정과 느낀점 등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즐거웠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경험이라 이 부분도 곧 정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4일간 학회에 참여한 경험을 글로 남겨보려 한다.

Day 0.

나를 포함해 발표를 위해 먼저 출발하는 사람들은 오후 2:45쯤 교수님 오피스에 모여 함께 포항 공항으로 향했다. 발표는 연구를 주도한 선배님이 맡으셨기 때문에 나는 제주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학회가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짐을 싸서 출발했다. 심지어 옷을 챙기는 것도 신경이 쓰여 한참을 고민했다. (뭐… 결론적으로는 꽤나 프리하게 입고 다녔다ㅎ)

그런데 교수님께서 출발 직전 “서예야, 마우스는 챙겨 가니?” 라고 물어보셨다. 평소 마우스를 잘 안 써서 ‘뭔가 마우스를 써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걸까..?’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실없는 생각을 하며 랩실에 있던 마우스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것은 복선이었다.

어쨌든,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길은 꽤 험난했다. 비가 오고 안개도 잔뜩 낀 날이었는데, 저녁을 먹은 식당의 위치 덕(?)에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교수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신 것 같긴 하지만 정말 카트라이더 타는 기분이었다ㅎㅎ… 9시가 넘은 시간에 간신히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그제야 내가 마우스를 챙겨야 했던 이유인 발표 슬라이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출발 전날이 또 다른 논문의 제출 마감이었어서 발표 슬라이드를 촉박하게 준비하게 된 상황이었다. 결국 늦은 시간까지 함께 슬라이드 작업을 진행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발표 과정에 더 참여할 수 있어 그마저도 좋았던 것 같다. 원래도 이 연구가 그냥 흔히 주어지지는 않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연구 내용 자체에도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 논문과 관련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게 즐겁고 감사했다.

Day 1.

학회 첫날 아침은 남은 슬라이드 작업과 함께 정신 없이 지나갔다. 소프트웨공학 분야 오전 세션 중 우리는 마지막 순서였다. 나는 스스로 느끼기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다른 팀의 발표를 들었다. 신기하고 재밌는 주재들이 많았고,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만약 나라면 어떻게 발표를 구성할까 같은 것들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발표 구성의 공통점과 차이점, 실험을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마 내가 나중에 하게 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비록 나는 조금은 소심해서(…) 실제로 질문을 하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질문거리들을 떠올리기도 했고, 옆에 계신 교수님께서 하시는 질문들을 들으며 신기해했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지적 자극들이 잔뜩 들어오고 있었는데 내가 그 순간을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커밋 분석, 그러나 우리의 수많은 시간과 고뇌와(ㅎ) 노력이 들어간 분석 내용들이 모여 좋은 데이터가 되었고, 그로부터 무언가 의미 있는 질문과 아이디어들을 던졌다는 사실이 상당히 짜릿하고 뿌듯했다. 발표 하시는 것을 들으며 “언젠가 나도 저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신기할 정도로 설렜던 것 같다. 질문이 들어왔을 때는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를 생각하며 함께 당황하거나 떨기도 했다.

여담으로, 어떤 교수님께서 데이터 분석에 어떤 방법을 사용한 건지 아니면 손으로 본 건지를 질문하셨는데, 손으로 봤다고 대답했을 때 술렁이는 반응들이 웃기고 인상적이었다ㅎㅎ 이 분들도 우리의 노가다 노력을 알아주시는 구나… 하는 생각?

오후에는 이런저런 워크샵과 포스터 세션을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정말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재밌어 보이는 주제도 있었고, 아무리 읽어도 내용이 눈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도 있었다… 배경지식에 따라 읽히는 내용과 느끼는 것에 정말 큰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았다. 어쨌든, 연구한 내용을 열심히, 때로는 전투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더해서, 어떤 포스터 앞에서 너무 흥미로워 하시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질문하고 계신 어느 교수님을 보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떤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지 궁금해서 옆에서 슬쩍 들어보려고 하였으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실패했다…

IoT쪽 워크샵을 들으면서는, 내용은 당연히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많은 insight를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전의 각성 상태가 이어져 “무엇이든 배우고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했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자면, 그날 들은 많은 연구 주제들이 시간, 비용, cost, 사람의 노력을 줄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효과적인 continuous fuzzing을 위해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참 좋은 일이었다는 생각을 IoT 세션을 들으면서 했던 것 같다.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살면서 먹어본 고기 중 가장 맛있었던 흑돼지를 배부르게 먹은 뒤 방에 들어오니 온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발표 때 약간의 각성,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쌓인 정신적 피로와 포스터 세션을 열심히 걸어다니며 쌓인 육체적 피로, 무엇보다 밤샘의 후유증이 뒤늦게 몰려오는 느낌이랄까. 호텔에 준비된 어메니티의 한라봉 향을 맡으며 ‘아 내가 제주도에 있긴 있구나’를 잠시 체감한 뒤 꿀같은 휴식을 취했다.

Day 2.

발표가 첫째날 끝난 덕에 둘째날은 좀 여유가 있어서,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오전~오후 동안 신진연구자 세션과 Top conference를 들으러 다녔다. 그래봤자 학부생 수준이지만 조금 더 익숙하고 관심 있는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 발표는 대부분 흥미롭게 들은 것 같다. 특히 뭔가 내가 경험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비슷한 접근 혹은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있는 연구들을 발견했을 때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머신러닝쪽 발표를 들을 땐 왜 그렇게 졸음이 몰려 오는지 (심지어 많은 비율을 AI/ML이 차지했다). 물론 지난 밤 그닥 일찍 잠들지 못한 탓에 피로가 덜 풀린 것도 있었겠지만… 세션을 듣는 내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발표도 잘 듣고, 모두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insight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아주 간절하게 했던 것 같다.

오후에도 세션을 듣다가 교수님의 소개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는 한동대 선배를 만나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제주도를 즐기러(!) 나갔다. 점심에 잠시 주상절리를 다녀온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이 때 부터 제대로 된 제주도 즐기기가 시작되었다.

정말 엄청 돌아다녔다. 최근 중 가장 많이 걸은 것 같다 (이것도 문제긴 하지만…). 나도 여전히 약간의 각성 상태 같은 게 남아 있어서, “제주도에 왔는데, 물론 놀러 온 건 아니지만 기회가 생겼는데, 어디든 안 갈 순 없지!” 하고 열심히 다닌 것 같다. 제대로 된 refresh였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경치를 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나에게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더해서, 그날도 아주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주상절리, 오름, 절벽이 있는 어느 이름 모를 바다 (아마 이름을 봤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천지연 폭포의 야경, 새연교와 방파제의 야경까지. 반나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을 행복하고 알차게 보냈다. 그리고 역시 한라봉 향 어메니티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에서 말 그대로 뻗었다… 아마 내 체력의 한계였던 것 같기도.

Day 3.

마지막 날은 일찍 일어나 아침 비행기를 타느라 정신 없었다. 제주도행 비행기에서와 달리 제대로 졸아 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지나간 듯 하면서도 정말 압축적인 4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KCC에 참여하게 된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다. 같은 논문을 바탕으로 내용을 조금 더 채워 진행하게 될 ERC 워크샵에서의 포스터 발표도 기대된다. 논문을 제출한 후에도 이렇게 그 논문의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는 것이 감사한 요즘이다.